도시와 연대기
미국 남북전쟁 기간 중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는 1863년 7월 1일부터 사흘간 5만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해 11월 19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에서 링컨 대통령의 연설은 이 작은 도시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당시 미국 정계와 사회에서는 갖가지 수식어와 수사법을 구사하는 장황한 연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런 추세와 동떨어진 약 3분간 272단어의 짤막한 스피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거듭 인용되고 있다.
“…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사라지지 않게…”라는 문구는 이후 민주정부의 소임을 웅변하는 불후의 명문장으로 회자된다. 인구 7000명 남짓한 작은 도시 게티즈버그는 링컨 연설의 후광 아래 관광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1598년 프랑스 중서부 도시 낭트에서는 국왕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선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이로써 처절했던 종교전쟁은 일단 수습되고 개신교도들은 신앙과 여러 사회적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 이후 낭트는 이런 화해와 관용, 자유의 역사적 연대기에 힘입어 독특한 도시 이미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도시와 문화 공간, 이벤트
그다지 특색 없던 도시, 이렇다 할 경쟁력이나 매력이 없어 주민들이 틈만 나면 이사를 꿈꾸던 지역이 문화공간 조성, 이벤트 도입으로 새로운 활력을 찾은 사례는 20세기 후반 이후 가속화되는 문화, 감성 트렌드에 힘입은 바 크다.
철강 산업 쇠락과 경제침체로 쇠락의 길을 걷던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는 1997년 문을 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막대한 경제 효과를 실현시켰다. 문화공간이 도시 전반에 미치는 선순환 과정은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도시재생, 도시부흥의 수범 사례로 문화산업의 잠재력과 실천적인 성공 사례를 설명할 때 늘 거론되는 도시로 꼽힌다.
프랑스 중서부 한적한 중소도시 앙굴렘은 올해로 51회를 맞은 국제만화축제로 매년 1월 혹한기 전 세계 문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행사 기간은 짧지만 도시 전체를 만화컨셉트로 단장하여 연중 방문객을 불러 모으는 만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도시와 인물
한 도시가 배출한 인물, 또는 그 지역과 연관이 있는 걸출한 인물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도시를 기억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는 서울 충무로인데 막상 충무로에는 작은 표지석 하나만 놓여있고 충무공의 기억은 충남 아산 현충사로 쏠린다. 아산에는 다른 볼거리, 즐길거리도 많은데 현충사로 표상, 집약되는 충무공의 흡인력은 막강하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시-인물의 구도 가운데 하나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도시 전체를 모차르트 마케팅으로 꾸려가는듯한 잘츠부르크는 사실 모차르트가 그다지 관심이나 애착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크게 성공했던 수도 빈을 더 사랑했음에도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는 30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 숫자는 경이적이다. 알프스 경관과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에 모차르트 삶과 예술의 명성이 더해진 잘츠부르크는 도시가 기억되는 매개체의 중요 요소가 인물임을 증거하고 있다.
저마다 도시 홍보에 골몰하는 이즈음 도시가 낳은 또는 연관 있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관심과 조명이 그래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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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독일어
오스트리아 현지 독일어 학원 & 유학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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