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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투기꾼이 19세기 파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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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프랑스 금융 근대화 시기

인간 군상 세밀하게 파헤친

에밀 졸라의 <돈>

 

 

프랑스 제2제정은 1852년부터 1870년까지 18년간 지속됐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의 조카)은 1848년 2월 혁명과 함께 제2공화정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1851년 친위 쿠데타를 통해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에 가까운 권한을 스스로 부여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아예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을 수립해 나폴레옹 3세로 즉위했습니다. 제2제정은 정치적 반동과 외교적 실패로 점철됐지만 철도 건설, 무역 촉진, 금융 근대화 등으로 경제는 활기차게 성장했습니다.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는 총 스무 권의 소설로 구성된 작품집으로 부제 ‘제2제정 시대 한 가족의 자연사 및 사회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시대의 사회경제적 특징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하고 있습니다. 총서를 구성하는 각각의 소설이 서로 간에 사건과 인물의 연속성이 있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마다 완결 구조를 띠어서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총서 제18권 <돈>(L’Argent)은 1864년부터 1869년까지 파리 은행과 증권가를 무대로 투기와 금융사기를 샅샅이 파헤칩니다.

 


 

시세조종·가장납입… 큰돈에 열광

 

주인공 아리스티드 사카르는 한때 잘나가던 재산가로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린 뒤에는 증권거래소 앞 단골 레스토랑에 가도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심지어 1851년 쿠데타 주역 중 한 명이자 실세 장관인 그의 형 위젠 루공은 사카르가 파산하자 공개적으로 동생과의 관계를 끊었다고 선언했습니다. 형제가 성이 다른 것도 위젠이 동생 때문에 자기 명성에 누가 될 것을 우려해 이름에서 루공을 빼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사카르가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자 루공은 국외 식민지에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말썽쟁이 동생을 국외로 내보낼 생각이지요. 하지만 파리에서 재기하고 싶은 사카르는 불같이 화내며 형을 저주합니다.

 

절치부심하던 사카르는 오랫동안 중동 지방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엔지니어 조르주 아믈랭에게서 이 지역에 철도, 도로, 운하를 건설할 아이디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회가 왔다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당시 유럽은 수에즈운하 건설 소식에 열광하던 때였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자금을 댈 만국은행(3년 뒤 개최될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을 설립해서 파리 증권거래소를 통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한번 금융가로 뛰어듭니다.

 

주인공 사카르가 은행을 설립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방법만 쓴 것은 아닙니다. 500프랑짜리 주식 5만 주를 발행해 자본금 2500만프랑의 은행을 설립하는데, 5만 주가 모두 인수되지 않았음에도 명의를 빌린 허위 인수자를 내세워 전체 주식이 인수된 것으로 꾸밉니다. 아믈랭의 누이 카롤린 부인이 오빠를 걱정해 불법임을 지적하고 만류하지만 사카르는 ‘불법이더라도 이는 모두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인수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밀어붙입니다. 이후에도 증자할 때마다 모든 주식이 다 인수되고 대금이 입금 완료됐다고 거짓으로 신고합니다. 요즘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장납입이라고 하는 범죄행위입니다. 또 주가를 억지로 부양하기 위해 매도 주문이 나올 때마다 가명으로 사들여서 만국은행 주식에 대한 매수세가 크다는 것을 시장에 유포합니다. 현재는 시세조종으로 금하는 행위이지만 당시에 이것은 불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이 모든 것을 은폐하기 위한 회계 조작도 있었고, 심지어 신문사를 사들여 과장된 기사를 수시로 살포했습니다.

 


 

현물보다 선물, 주가 하락에 ‘베팅’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의 증권시장만큼 국내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파리의 증권시장도 역사가 오래된 선진 시장입니다. 파리 증권거래소는 1802년 나폴레옹 1세의 칙령에 의해 설립됐고, 1807년 제정된 상법에 따라 법적 기반과 절차가 확립됐습니다. 이 외에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장외시장 거래도 활발했습니다. 국채와 주요 기업 증권을 중개하는 것은 거래소에 등록된 중개인들만 할 수 있었는데, 파리 거래소는 등록 중개인을 60명으로 한정하고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소설에는 파리 증권거래소와 장외시장, 은행, 금융전문 신문 등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조는 32살의 등록 중개인인데 그의 사무실은 많은 직원을 두고 ‘현물거래실’과 ‘선물거래실’을 따로 둘 정도로 규모가 크고 전문적입니다. 개인에게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에 중개인이라고 불렸지만, 등록 중개인은 사실상 오늘날의 증권회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인된 중개인들과 투자자들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마시아와 같은 하급중개인도 있고, 심지어 파산한 기업과 개인의 주식과 차용증을 헐값에 사들여 가혹하게 추심하는 뷔슈와 메솅 같은 악당도 있습니다.

 

사카르와 부딪히는 경쟁자는 은행왕이자 거래소를 지배하는 유대인 군데르만입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주식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자도바 전투에서 패한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에 설욕하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군데르만을 위시한 많은 투자자는 전쟁이 더욱 가열차게 지속하리라 예측하고 주가 하락에 거액을 베팅했습니다.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던 어느 날 사카르는 국회의원 위레로부터 곧 휴전된다는 극비 외교 정보를 획득합니다. 둘은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미친 듯이 주가 상승에 돈을 겁니다. 며칠 뒤 휴전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치솟아 군데르만은 무려 800만프랑의 손실을 입었는데, 그 돈의 대부분은 사카르, 위레와 만국은행 주주들에게 흘러들어 갔습니다. 이후 군데르만이 만국은행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채고 주가 하락에 승부를 걸면서 다시 한번 둘 사이에 사생결단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시기 투자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주가 하락에 투자할 수 있었을까요? 흥미롭게도 당시 파리 증권거래소는 현물시장보다 선물시장이 더 발달해 있었습니다. 현물시장에서는 거래 체결 직후 주식과 현금이 교환되고 결제가 완료되지만, 선물시장에서는 거래 뒤 일정한 날짜(매월 15일과 말일 두 번)에 결제가 수행됩니다. 주가 하락을 점치는 투자자는 미리 선물시장에서 일정한 금액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결제일에 주가가 하락하면 현물시장에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선물시장에서 약정한 높은 가격으로 매도해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상과 달리 주가가 오르면 손실을 보게 됩니다.

 


 

위니옹제네랄은행 파산을 모델로 소설 구성

 

사카르는 은행을 설립할 때부터 파산 이후까지 지속해서 가톨릭의 강화를 주장하며 군데르만으로 대표되는 유대 금융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조국도 국왕도 없는 저주받은 종족이며, 절도와 피와 분노의 신을 섬기고 기생충처럼 살아가며 황금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금융시장을 지배한 유대인을 비난하는 정서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 오랜 전통이 있고 널리 퍼져 있었던 현상입니다.

 

특히 졸라가 소설을 준비하면서 위니옹제네랄은행의 1882년 파산을 취재한 영향도 있었습니다. 위니옹제네랄은 1875년 가톨릭계 왕당파 주도하에 설립된 7년 뒤 파산했고, 그것 때문에 파리 증권거래소가 붕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은행장이었던 폴 봉투가 유대인들의 음모 때문에 파산했다는 음모론을 강력히 제기했지만, 실제로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와 회계사기가 파산 원인이었고 5년형에 처해졌습니다(소설 속 사카르 역시 5년형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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