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인 IAEA의 ‘방사성폐기물 및 사용후핵연료 안전에 관한 국제 공동 협약’에는 전 세계의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시키는 거의 모든 국가인 89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다. 이 협약은 IAEA의 여러 협약 중 유일하게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국제 공동 협약이고 우리나라는 1997년 이에 서명하였다.
협약을 맺은 모든 국가는 협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특히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모든 과정에서 사람과 환경이 방사선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동 협약의 당사국들은 매 3년마다 IAEA의 비엔나에 모여 이러한 의무사항을 점검하는데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은 대체적으로 잘 관리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내 현재의 저장량에 한계가 있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중장기 관리대책 수립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받는다.
사용후핵연료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관리 기간이 만년 이상으로 매우 길어 특히 미래세대가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잘못하면 원자력 발전으로 생기는 전기의 혜택은 현세대가 누리고 방사선은 미래세대가 떠맡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즉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비도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 다른 나라들도 사용후핵연료 저장 처리 처분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구처분장이다.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한 프랑스 및 일본 등 주요 원전운영국들은 이 시설을 이미 확보하고 있으며, 영구처분장을 땅속 깊은 곳에 마련하기 위해 지질조사를 하며 방사선의 장기 영향을 예측하기 위한 지하 연구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원자력 국가인 핀란드는 내년인 2025년 운영 개시를 목표로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을 수도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250㎞ 떨어진 올킬루오토섬 지하 450m 깊이에 건설하고 있다. 프랑스도 동북부 뷔르 지역에 영구처분장 부지를 마련해 2025년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고 스웨덴도 비슷한 시기에 영구처분장을 완성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의 원자력 선진국들이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사정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인 고준위 방폐장 부지부터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각각 2건의 고준위방폐물 법률 제・개정안을 발의했고 소관 상임위에서 11차에 걸친 논의를 통해 쟁점을 대부분 해소했지만, 아직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고자 했을 때도 이해관계가 얽혀 20년 동안이나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특별법을 통해서 해결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의 첫 단추인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문제는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하여 특별법을 통해서라도 한시바삐 해결해야 한다. 최근에 국회에서 여야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견 접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하여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 문제도 해결하고 영구처분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의무이다.
기고 - 송명재 IAEA 국제공동협약 전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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