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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속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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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세상을 돌아보기 힘들 만큼 바쁘거나 이 나라의 방송 매체와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같은 노동시장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전 지구적으로 유행하는 말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에너지 전환, 제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그리고 패도(覇道)가 지배하는 글로벌 무역질서의 재편 내지는 혼돈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다시 선거의 시절이 왔다. 그런데 대전환이 아니라 엉뚱한 이슈가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 나쁜 징조다. 정치가 현실과 동떨어진 게 어디 하루 이틀의 문제였던가?


기후위기의 규모와 위력은 아마도 공룡을 멸종시켰던 무시무시한 재앙에 버금간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규제 프레임의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장막 속에서 일어났던 기업활동의 무책임한 폐악, 환경과 사회에 대한 나쁜 영향(외부성)을 공개하고 책임지게 하는 거대한 변화다. 불투명한 자본주의에서 투명한 자본주의로 탈바꿈, 이것이 어디까지 일어날지 두고볼 일이지만 적어도 기후위기와 관련된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미중 패권경쟁이 초래하는 무역질서의 불확실성 속에서 1년, 2년의 질서가 아니라 50년, 100년의 질서가 결정된다. 세계 무역질서와 기술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혼란기, 무능한 정치, 무능한 외교, 무능한 경제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경쟁국들은 50년, 100년을 선점하는 성과로 치고 나간다.

지난 2년 연속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평균성장률을 하회했다. 처음 겪는 일이다. 경제발전 단계가 올라가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2021년까지는 OECD 선진국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시민의 이성 마비될 때 괴물 만들어져

 

201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원인이 총요소생산성의 급락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급락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수출 대기업들의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이라는 연구도 있다.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에 올인해도 부족할 판에 재벌 일가의 경영권 세습, 사익편취 등에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사내 인적·물적 자원까지 낭비하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의 힘, 인적 자본 하나로 버티던 대한민국 경제가 이제는 사람도 키워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선진국 수준의 발전단계에 걸맞은 인재 양성은 피와 땀, 개인의 노력과 인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사회적 역량, 제도적 환경, 공정한 시장의 선별 역량 같은 새로운 여건들을 갖춰야 한다. 그동안 사람의 힘만 믿었지, 제도의 힘과 시장의 근육을 키울 생각을 못 했었나? 그런 생각에 붉은 선이 그어진 것은 아닌가?

시민들의 이성이 마비될 때 민주주의라는 울타리 속에서 정치괴물이 만들어진다. 싸움 잘하는 나라의 패도가 전 세계를 군림했던 침략주의의 현대사에서, 문명국을 자부했던 나라의 민주주의가 반문명적 침략의 수괴를 만들고 문명국이 강도가 되어 전 지구를 누비며 약탈을 자행했다. 때로는 그 야만성이 극에 달해 집단학살, 인종청소 같은 극악한 범죄로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1938년 나치스 독일의 오스트리아 침공에 분노한 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을 쓴다. 시민의 이성이 깨어있는 열린 사회,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한민국은 나이로 보면 민주주의 중학생이다. 침략국의 파시즘이 물러나자, 북은 김일성-김정일 독재, 남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가 이어졌다. 깨어있는 시민의 이성보다 눈먼 시민의 감성이 살아 숨 쉬던 기나긴 전체주의의 닫힌 사회를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허울뿐이고, 권위주의와 우상이 시민의 정신을 지배했다. 무시할 수 없는 다수의 눈먼 감성이 전체주의와 독재자를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분노한 시민들이 이성의 눈을 뜨고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닫힌 사회의 정치 유산과 폐습이 이어져 시민의 이성과 민주주의를 마비시키는 것 같다.

시민의 이성이 마비된 시장경제에서는 경제괴물들이 만들어진다.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려는 시민의 자유가 억눌리고, 탐욕의 주머니에 자원이 쌓일 때 혁신은 사라지고 경제는 퇴보한다. 국부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는 시장경제는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자연적 자유의 시스템' 속에서 작동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이 경제적 자유를 누릴 때 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시장경제는 혁신과 발전을 구현한다.

시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치와 경제의 괴물들을 제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겠는가? 이런 개혁이 지극에 이를 때 정치와 경제가 한 몸으로 발전한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이런 소명감에 불타는 성(誠)한 사람은 살려야 하고, 소리에 불과한 말을 나불대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불성한 사람은 걸러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이 작동할 때 정치와 경제는 한 몸처럼 발전하고 그것이 가로막힐 때 퇴보한다. 그래서 <중용>은 "정치는 도덕에 가장 민감하다"고 했다. 도덕을 실천하는 성한 사람을 구하면, 그 나라는 "갈대가 자라듯 순식간에 번성"하고 그렇지 못하면 빠르게 쇠락한다는 것이다.

 


사익 탐하는 욕망, 엘리트 마음에 꿈틀대

경기 양평군 양평체육공원에서 시민들이 국회의원 후보의 유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닫힌 사회의 거대 수혜자들, 그들의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탐욕이 언제나 열린 사회를 가로막는 적이었다. 19세기 미국의 독점자본, 그리고 그 자본과 유착한 정치가 그랬다. 그 적을 무너뜨렸던 개혁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도 없다.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 대한민국, 재벌 기업집단 안에서 세습자본의 성을 구축하고 회사와 나라의 이익을 팔아 사익을 탐하려는 욕망이란 적이 꿈틀댄다. 대형 족벌 언론사 안에서도 세습자본의 성을 구축하여 공공의 정보를 조작하고 시민의 생각을 농간하여 사익을 탐하려는 욕망이란 적이 꿈틀댄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의 초대형 종교기관들 속에서도 세습자본의 성을 구축하여 신을 팔아 사익을 탐하려는 욕망의 적이 꿈틀댄다.

그리고 이 모든 세습자본, 돈 권력의 머슴이 되어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공권력을 팔고 사익을 탐하려는 욕망이란 적이, 관료 사회, 검찰, 사법, 금융, 언론 등에서 활약하는 슈퍼 엘리트들의 마음에도 꿈틀댄다.

이 거대한 돈의 힘, 거대 권력 안에서 꿈틀대는 탐욕이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깨어있는 시민의 이성이라면 잠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열린 사회를 지키는 길이고 자연적 자유의 시스템 속에서 국가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길이다.

열린 사회의 적들이 반중용(反中庸)하고 거대 탐욕이 발하여 사회를 어지럽힐 때 국가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이 열린 사회의 적들을 평정할 때 세상은 중화(中和)에 이르고 '천지위언, 만물육언(天地位焉, 萬物育焉)'하는 번영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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