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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생활]

상속세 논쟁: 상속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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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사망한 사람의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창안한 이 세금은 18세기 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졌다. 대한민국에선 1950년 상속세법이 제정되며 자리 잡았죠.

오스트리아, 스웨덴, 캐나다, 러시아, 인도, 중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속세가 없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일본, 한국, 프랑스, 영국, 미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40%가 넘는 국가들이다. 이렇게 국가 간 차이가 크다 보니 항상 어느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마침 16일 대통령실이 상속세 전면 개편을 예고했다.

 

 

 

진보는 찬성, 보수는 반대?

 

어느 한 편으로는 정치적 이념의 문제처럼 보인다. 16일 대통령실은 상속세 최고세율(과세표준 30억원 이상)을 50%에서 30% 내외로 낮추는 걸 검토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자산 100억원 이상)을 90%로 높인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직계비속에게 상속할 때 적용되는 각 나라별 상속세율. 한국은 10~50%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영국과 미국은 40% 정률 과세이다. OECD다른 나라에서 벌이지는 상속세 논쟁 구도로 비슷해 보인다.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둔 국에선 보수당이 과감하게도 ‘상속세 단계적 폐지론’을 꺼냈었다. 이에 반대하는 노동당과 지난 몇 달 동안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상속세 폐지는 보수당의 최종 총선 공약에선 결국 빠짐).

미국에선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무려 2배로 올려버렸다(500만 달러→1000만 달러, 이후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올해는 1361만 달러, 약 188억원이 됨). 상속세 부과 대상을 확 줄였다. 늘어난 공제한도가 예정대로 2026년 1월 다시 원상 복귀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올해 11월 대선 결과에 달려있다. 만약 바이든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6년 1월부터 공제한도가 절반인 700만 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수 정당은 높은 상속세에 반대, 진보 정당은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높은 상속세율은 공산주의 이론가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엔 상속세가 없죠. 잠깐 동안(1940~49년)만 있다가 폐지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은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했던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OECD 국가 38개국 중 현재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14개국이며, 이들 국가에서 뚜렷한 이념적 공통점을 찾기란 어렵다.(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라트비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 멕시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상속세를 운영하는 전 세계 국가 수의 변화

 

1980년대 들어 상속세를 없애는 국가가 늘면서 상속세 운영 국가가 줄어드는 추세다.

 

생각해보면 세금 중 개인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거의 모든 나라에 다 있다. 이런 세금을 없애려는 시도는 별로 없는 반면, 상속세는 원래 있다가 없애버린 나라가 꽤 많다는 게 놀라운 점이다.

이들 국가가 갑자기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에 무심해진 걸까. 그래서 부자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걸까. 아니다. 대체로 상속세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행정 효율에 있다. 모든 세금에는 징수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데 행정력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상속자가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 부동산이나 기업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에 비해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 차지하는 비중은 쥐꼬리 수준(OECD 평균 0.5%)이다. 집행 비용에 비해 얻는 수익이 적다보니 상속세를 따로 두는 효용이 적다. 차라리 세금 종류를 줄이고, 소득세 같은 다른 세금을 조정하는 것이 과세 행정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가 상속세 폐지로 이어졌다. 캐나다·호주·스웨덴·뉴질랜드의 경우엔 상속세를 없애고 대신 양도소득세(자본이득세, 상속 재산을 파는 시점에 세금을 매김)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죽음에 대한 세금

 

상속세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공격을 받아왔다. 세금 성격 상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고대 로마 철학자 플리니우스는 약 2000년 전에 “직계 상속인의 지분에 대한 세금은 유족의 슬픔을 가중시키는 부자연스러운 세금이다.”라고 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스티븐 므누신도 상속세를 “죽음에 대한 세금”이라 불렀다. 영국에선 상속세가 “가장 혐오하는 세금”으로 불리기도 한다. 얼마 전 인도에선 총선을 앞두고 야당 의원이 부자 증세를 위해 미국처럼 상속세를 부활하자고 주장했다가 난리가 났다(인도는 1985년 상속세 폐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야당은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 남긴 재산을 빼앗을 계획이다.”라며 야당을 제압했다.

 

늘어나는 상속세 과세인원

 

물론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을 수 있기에, 그게 바로 상속세가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지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을 축적하면서 상당히 부유해졌고 물려줄 것이 늘어났다. 이에 비해 상속세 공제 기준은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은 32.5만 파운드(약 5억7000만 원) 기준을 16년째 유지 중이고 한국은 1999년부터 26년째 5억 원이 일괄공제 한도다. 그 결과 상속세 부과 대상이 빠르게 늘어나게 되었다. 보통 1% 수준인 다른 나라와 달리, 이제 영국은 피상속인 기준으로 5.1%, 한국은 4.53%가 상속세를 낸다. ‘겨우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이들 국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중과세 논란과 유산취득세

 

사실 상속세 비판 논리에도 이중과세 같은 허점은 있다. 이미 재산을 형성할 때 소득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모아둔 재산인데, 왜 여기에 세금을 또 매기는지가 쟁점인데, 생각해보면 이것을 이중과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가 세후 소득으로 직원에게 월급을 줬다고 해서, 그 직원이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상속세 역시 기본적으로 상속을 받은 사람이 내는 세금이라는 점에선 엄밀히 따지면 이중과세는 아니다. 세금에 있어선 부모와 자녀를 각각 독립된 주체로 보기에, 이런 관점에선 부모의 유산은 자녀에겐 불로소득일 뿐이다.
 

물론 이는 관점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이중과세처럼 느껴지는 데는 ‘유산세’라는 부과방식 탓이 크다. 유산세 방식은 OECD 국가 중 한국 포함 4개국(영국, 미국, 덴마크까지)에만 해당된다. 이건 물려 주는 사람(죽은 사람) 재산 전체에 통으로 상속세를 매기는 것이다. 예컨대 피상속인이 물려주는 재산이 과표 기준 30억 원을 넘으면, 상속인이 몇 명이든 상관없이 최고세율(50%)이 되는 식이다. 그중 1억 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10억 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세율은 똑같다.

일본 포함 다른 OECD 20개 국가는 상속세 계산법이 다르다. 죽은 사람이 얼마를 남겼느냐가 아니라, 상속을 받는 사람이 얼마 받았냐를 각각 따져서 상속세를 매긴다. 이걸 ‘유산취득세’ 방식이라고 부른다. 유산 총액이 30억 원이라고 해도, 1억 원 물려받은 상속인은 1억 원을 기준으로, 10억 원 상속인은 10억 원을 기준으로 각각 상속세율이 결정된다. 자연히 세율은 훨씬 낮아진다.

유산세가 ‘죽음 사람 재산에 매기는 세금’이라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공짜로 물려받은 재산에 물리는 세금’인 셈이다. 어느 게 더 합리적일까. OECD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2021년 보고서에 “유산세보다는 상속인이 받는 부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게(유산취득세) 더 기회균등 면에서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유산취득세는 납세자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과세한다는 원칙에도 더 부합하고, 또 이중과세 논란에서도 훨씬 자유롭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자는 얘기가 꾸준히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정부 위원회가 이를 공식 제안했고, 2022년 기획재정부가 관련 TF를 꾸렸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대통령실이 이 유산취득세를 들고 나왔다. 물론 세금 제도를 74년 만에 완전히 뜯어고치는 일은 쉽지 않다. 부자 감세다, 세수 감소는 어쩌냐, 위장 분할 상속으로 세금을 피하면 어쩌냐 등의 부작용 우려가 이미 나온다. 하지만 제도를 설계하기 나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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