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외환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을 이끄는 달러화 강세의 원인으로 유로화 약세 흐름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 탈동조화, 기대에 못미치는 유로존 경기회복 강도, 여기에 유럽 내 정치적 리스크까지 더해진 것이 유로화 약세 및 달러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직면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유로화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오는 30일 실시될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가 유로화의 추가 약세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치 리스크에 직격탄 맞은 유로화
25일(이하 현지시간) 유로·달러 환율은 1.070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1일 한 때 1.0680달러까지 내려갔던 것과 비교하면 유로화 약세가 다소 주춤해진 모습이지만, 유로당 달러 환율이 1.1달러를 넘나들었던 연초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유로화 약세를 이끈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유럽의 정치 리스크다.
앞서 지난 6~9일 유럽연합(EU) 선거가 실시됐는데,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극우 진영이 돌풍을 일으켰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폴란드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오랜 라이벌인 마린 르펜이 속한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이 크게 약진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조기 해산과 함께 오는 6월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RN 지지율이 1위를 달리고 있고,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와 그 연대 세력 지지율은 3위에 그쳤다. 이로 인해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가 구성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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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프랑스-독일 10년물 스프레드 확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U 선거 직후인 9일부터 벌어진 스프레드는 25일에는 78베이시스포인트(bp)까지 확대됐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는 2017년 대선에서 EU 탈퇴를 기치로 내건 르펜이 2위로 약진했던 당시 수준과 유사하다"며 "당시 유로·달러는 1.05달러까지 하락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유로화의 움직임은 프랑스-독일 국채 스프레드 확대에 비해서는 안정적"이라면서도 "옵션 가격에 반영된 위험(25 델타 리스크 리버설)을 감안할 때에는 1년 내 유로화 약세가 심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도 유로화의 추가적인 약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30일 프랑스 총선 결과가 유로화 분수령
증권가에서는 오는 30일 예정된 총선 결과가 유로화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30일 실시될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는 유로화 추가 약세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며 "극우 내각 출범 가능성이 커진다면 유로화의 추가 약세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리스크로 인한 유로화 추가 약세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선거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RN이 다수당이 된다 하더라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현재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RN이 크게 약진하여 과받을 얻으며 다수당이 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조르당 바르델라 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이 확실시되고, RN의 입법 독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연구원은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프랑스는 대통령이 국방, 외교를 관할하고 총리·내각이 입법과 내치를 담당하는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어 마크롱 대통령의 임기인 2027년까지는 대통령의 소관 하에 있는 부분들, 특히 EU 및 나토와의 즉각적 관계 변화 가능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박수연 연구원 역시 "르펜은 '제도적 혼란을 바라지 않으며 조기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이는 RN이 집권당이 되더라도 2022년보다는 온건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시장 기대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30일 예정된 프랑스 총선 이벤트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로 인해 오히려 일시적인 유로화 절상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정건전성 문제는 유로화 절상 제한할 듯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재정건전성 문제가 유로화 절상을 제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지난 19일 EU 집행위원회는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7개 회원국의 초과재정적자 시정절차(EDP) 시행을 EU 이사회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의 EDP 조치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과 결합돼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연구원은 "선거 이후에는 재정건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3분기 중 유로화 절상을 제한할 전망"이라며 "특히 9월 미 연준이 인하를 개시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금리인하가 분명한 달러 절하 압력으로 작용하더라도 유로화 절상폭은 크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 및 금리 안정이 관건이라는 평가
선거 결과보다는 물가와 금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수석 연구위원은 "총선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며 프랑스와 영국 내각 교체와 그에 따른 정책 변화에 대해 금융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확실하다"며 "중요한 것은 물가와 금리가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유럽 내 불고 있는 정권 교체 요구는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으로, 총선을 통해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인플레이션과 금리 안정이 결국 관건이라는 것.
그는 "만약 인플레이션 불안이 재연된다면 정치 불안도 지속되고 금융시장이 큰 변동성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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