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핫’한 여행지로 떠오른 곳이 포르투갈이다. 과거 유럽여행의 단골 목적지는 한 번에 여러 나라를 들르는 일정의 서유럽이나 동유럽 국가 중심이었다. 요즘은 유럽 어디가 됐든 특정 국가를 깊이 들여다보고 체험하는 여행이 인기다.
사실 포르투갈은 대중 여행지로 약점이 적지 않다. 거리가 멀기도 하거니와 이베리아 반도 끝에 뚝 떨어져 있어 다른 나라와 연계 일정을 짜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매력이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역사와 종교, 와인, 미식 등을 두루 아우를 수 있다. 게다가 물가도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포르투갈에서도 이런 강점이 두드러지는 목적지가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다. 포르투가 왜 매혹적인 여행지일까.
해리포터 만나러 포르투에 간다고?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5월. 트위터로 팬들과 대화하던 ‘해리포터’의 작가 J K 롤링이 ‘렐루서점’(Livraria Lello) 얘기를 꺼냈다. 렐루서점은 포르투갈 제2 도시 ‘포르투’에 있는 서점. 1906년 문을 연 이 서점은 화려한 장식과 고풍스러운 책장, 호리병 모양으로 말려 올라가는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계단이 인상적인 곳이다. 렐루서점은 포르투의 관광명소를 꼽는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순전히 ‘렐루서점을 보기 위해서’ 포르투에 간다는 사람도 없지 않을 정도다.
렐루서점의 인기는 전적으로 소설 ‘해리포터’에 힘입는다. 서점은 해리포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도서관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졌다. 더 나아가 롤링이 ‘렐루서점에서 해리포터의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다녔다. 실제로 영국 출신인 롤링은 1991년 포르투갈로 건너가 포르투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롤링은 현지 방송국 기자와 결혼해 포르투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가 포르투에 머문 기간은 3년 남짓. 그리고 6년 뒤 ‘해리포터’ 시리즈 첫 권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나왔으니 앞뒤 정황으로 보면, 이야기는 그럴듯했고 다들 그렇게 믿었다.
다시 롤링의 트위터 얘기로 돌아가 보자. 롤링은 렐루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렐루서점이 아름답다고 해서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그때는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 선을 넘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저자의 답이었으니 렐루서점과 롤링은, 아니 렐루서점과 해리포터는 ‘전혀 관계없는 곳’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저자가 부인하든 말든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그곳은 ‘해리포터 배경’이다. 아르누보 스타일에 신고딕양식을 덧댄 서점 외관이나 붉은 카펫과 유연한 곡선 계단이 어우러진 내부 공간이 즉각적으로 해리포터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저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렐루서점이 여전히 ‘해리포터’의 명소로 인정받는 이유다.
해리포터 명소에 해리포터는 없다
렐루서점은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서 이제는 며칠 전에 방문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15분 단위’로 인터넷 예약을 받는데, 서점 입장료로 8유로를 사전결제해야 한다. 책이나 물건을 사면 입장료만큼 깎아준다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포르투갈어책을 사는 경우가 드물 테니 그냥 입장료다. 그런데도 서점 앞에는 예약한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선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도 북새통이다. 곡선의 계단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려는 여행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포르투에는 렐루서점과 함께 ‘해리포터 명소’로 꼽히는 곳이 몇 곳 더 있다. 1921년 문을 열어 한때 지식인들의 사교 중심지였다는 ‘카페 마제스틱’(Cafe Majestic)은 롤링이 해리포터의 첫 번째 이야기를 구상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롤링은 이 사실도 부인했다. 롤링은 “해리포터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곳은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고 했다. 포르투의 카페는 언급조차 없었는데, 여기도 뭐 그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해리포터 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으니까.
롤링이 포르투에 머물던 시절, 이 카페에 자주 드나든 건 사실이다. 그 무렵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집필할 당시였다고 보면 ‘이야기 구상’까지는 아니었어도, 이곳에서 글을 썼을 가능성이 크긴 하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카페 마제스틱은 들러볼 만한 곳이다. 세련된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느낌이 매혹적이다. 실내는 중세풍이다. 가죽 의자와 대리석 바닥, 우아한 샹들리에로 장식된 실내는 고전적이면서도 이국적이다.
렐루서점과 카페 마제스틱에 이어 포르투가 가진 해리포터 세 번째 명소는 분수다. 렐루서점을 등지고 언덕을 잠깐만 오르면 '고메스 테세이라'(Gomes Teixeira) 광장이다. 이 광장에는 사자 분수가 있다. 분수 아래 네 마리의 날개 달린 사자가 물을 뿜는다. 분수의 초록색 네 마리 사자가 해리포터 책 속의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는 얘기가 있다. 이것도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역사 도시의 명소에 역사가 없다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작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본이 나온 건 1997년. 저자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품 구상을 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1990년이다. 그러니 ‘해리포터와의 관계’라면 고작 20∼30년 전의 일인 셈이다. 포르투에서 궁금했던 건 이런 거다. 다양한 분야의 어마어마한 콘텐츠로 양산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고 하지만, 고작 20∼30년 정도 된 공간이 이 정도로 각광받을 만한가이다. 그것도 고대 로마의 전초기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도시 전체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도시 포르투에서 말이다.
해리포터야 워낙 ‘시대의 아이콘’이라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곳은 어떤가. 역시 포르투의 명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 벤투역’(Sao Bento)이다. 역이 있는 자리는 도무지 역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비탈 지형이다. 본래 이곳은 수도원이었다. 큰불이 나서 폐허가 된 곳을 19세기 들어 재건하면서 역이 된 것이란다. 대체 여기로 어떻게 기차가 들어오나 싶었는데,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 만든 터널로 기차가 들어온다.
상 벤투역의 인기는 ‘타일’에 있다. 내벽이 파란색을 주조로 한 타일로 장식돼 있다. 주석유약을 사용해 구운 도자기 같은 바탕에 푸른색 그림을 그려 넣은 이런 타일을 ‘아줄레주’라 부른다. 아줄레주란 ‘광택을 낸 돌’이란 뜻의 아랍어다. 상 벤투역의 내벽은 2만여 개의 아줄레주 타일에 그린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타일로 그려낸 건 포르투갈의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다. 타일을 만들어 붙이기까지 자그마치 12년이 걸렸다.
상 벤투역의 거대하고 정교한 아줄레주 작업이 끝난 건 1917년. 그러니까 100년이 좀 넘었다는 얘기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1000년을 헤아리는 도시의 역사에서 ‘100년’이라면 좀 짧다. 12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이나 15세기의 수도원을 비롯해 시간이 묻어나는 고색창연한 유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포르투에서 주목받는 소위 ‘간판급 명소’는 이렇게 ‘젊은’ 곳이 많다.
카르무성당 외벽의 거대한 아줄레주도 1912년에 만든 것이고, 신고전주의 양식의 볼사궁전도 내부장식이 완성된 건 1910년의 일이다. 뒤에 다시 얘기할 포르투의 대표 상징인 ‘동 루이스 1세’(Dom Luis I Bridge) 다리 역시 1886년에야 세워졌다. 해 질 무렵 다리와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 중의 명소인 모루공원도 1927년에 조성됐다. 포르투에서 가장 큰 광장인 리베르나데 광장에서 여행자를 불러 모으고 있는 아르데코 양식의 ‘맥도날드’가 근래의 것이란 건 말할 것도 없다.
무겁지 않아서 더 좋은 여행지
포르투가 가진 여행지로서의 가장 큰 매력은 ‘너무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의 이른바 주류 역사는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왕국이 중심이다. 이들 나라의 역사와 예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번성했다. 이런 나라에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유적과 유물, 예술품이 있는 건 당연한 일. 그걸 다듬고 매만져서 만들어낸 매력적인 공간도 많다.
이런 나라를 여행하는 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에 무거워지기도 한다. 가봐야 할 곳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아서다. 압박감 속에서 공부하듯 다니는 게 즐거울 때도 있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포르투갈 여행은 한결 가볍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의 변방에 있다. 이베리아 반도 끝에 뚝 떨어진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였고, 유럽 전반의 역사에 미친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역사적 황금기인 ‘대항해시대’의 번성이 있었다지만, 제국을 일궈 얻은 수입을 왕실과 귀족들이 사치와 과시적 소비로 탕진했다. 포르투갈이 경영했던 영광의 시대가 이어지지 못했던 건 상인계층으로 부가 흘러들어 가지 못해 봉건사회에서 상업사회로의 이행이 크게 늦어졌던 데도 이유가 있다.
게다가 대항해시대 시기에 그나마 중계무역과 신대륙의 황금으로 흥청거리던 중심은 수도 리스본이었고, 여기 포르투는 역사는 오래지만 그저 상업이 활발했던 항구도시였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여행지로 관심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포르투는 도시의 오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해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데 아직 서툴러 보인다.
‘발길 닿는 대로’만으로 충분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포르투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가봐야 할 곳이나, 행여 빠뜨리면 큰일 날 것 같은 명소가 없다. 역설 같지만 ‘꼭 봐야 할 곳이 없다’는 게 포르투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렇다고 ‘진짜’ 볼 게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도시 구석구석에는 볼 것이 있다. 궁전, 성당, 수도원, 광장, 시장, 미술관…. 이 중 도드라지는 한두 곳이 없다는 뜻이다. 포르투에서는 이런 곳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빈티지 스타일로 가득한 올드시티의 비밀 통로 같은 골목을 산책하는 것도 좋고, 카페와 작은 상점이 즐비한 플로레스 거리에서 쇼핑을 하거나 파스텔 톤 건물이 빼곡하게 늘어선 도루강변 히베이라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즐겨도 좋다.
그래도 포르투에서 한 곳만 추천하라면 볼사궁전에서 가까운 ‘카사 두 인판테(Casa do Infante·왕자의 집)’다. 여기는 대항해시대를 후원했던 ‘해양왕’ 엔히크 왕자가 태어난 곳이다. ‘인판테’란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를 이르는 말. 왕자의 집은 세관으로 쓰이다가 중세 이후 화폐제조소가 들어섰던 자리를 역사 전시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옛 건물의 유적을 주로 소개해놓았는데,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포르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특히 포르투의 옛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는, 번성했던 시절 포르투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준다. 이곳을 권하는 이유는 포르투에 이렇다 할 역사박물관이 한 곳도 없어서다.
포르투의 랜드마크 뒤에 에펠이 있다
포르투의 랜드마크는 아치형의 거대한 철골조로 만든 ‘동 루이스 1세’ 다리다.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동’ 루이스라니 ‘동(東)’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포르투갈어 ‘동(Don)’이다. 이름 앞에 존경의 의미로 붙이는 경어란다. ‘동키호테’ 같은 경우다. 다리 이름으로 삼은 루이스 1세는 포르투갈의 국왕이다. 무슨 대단한 업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의 재임 시절에 이 다리가 놓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루이스 1세의 아내 왕비 도나 마리아 피아 이름을 딴 철골조 다리도 있다.
도루강은 유속이 빠르고 강바닥이 자갈이라 강 중간에 교각을 설치하기 어려웠다. 강 위에 교각을 세우지 않고 강 양쪽 화강암 지반에다 철골조로 아치를 놓아 다리를 만든 건 그래서다. 둘 중 먼저 만들어진 건 왕이 아닌 왕비 이름을 딴 마리아 피아 다리였다. 마리아 피아 다리는 훗날 에펠탑을 세운 귀스타브 에펠이 1877년 동업자 겸 제자인 테오필 세리그와 함께 세웠다. 에펠탑에서 보듯 철골구조물에 관한 한 에펠은 당대 최고 전문가였다.
동업관계를 청산한 에펠과 테오필 세리그는 10년쯤 뒤에 동 루이스 1세 다리 건설을 놓고 수주 경쟁을 펼쳤다. 결과는 비용 절감이나 수용 능력 부문에서 앞선 테오필 세리그의 완승이었다. 스승이 제자에 진 셈이었다. 세리그는 마리아 피아 다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다리를 완성했다. 다리는 상부와 하부의 2층 구조다. 상부는 1886년 개장했고, 2년 뒤에 하부 다리까지 완공했다. 세리그가 다리를 완공한 이듬해에 에펠은 파리에 에펠탑을 세웠다. 만일 다리 건설에 세리그가 아닌 에펠의 설계가 채택됐더라면, 과연 에펠은 빠듯한 일정에 에펠탑을 지을 수 있었을까.
포르투의 경관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
철골로 덧대 만든 아치형 다리인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모양은 다르지만, 구조의 느낌은 한강철교와 엇비슷하다.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심드렁했다. 철교가 관광지라고? 우아한 미감이 돋보이는 다리도 아니고, 극적인 이야기도 없는데 그게 무슨 관광명소일까. 그런데 가서 보니 다리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구조의 효율’로만 읽었던 아치형의 철골구조가 이렇듯 아름다운 것이었나 새삼스러웠다.
압권은 야경이었다. 불 켜진 다리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우악스럽다고 생각했던 철골구조는, 불빛이 들어오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등처럼, 혹은 케이크의 촛불처럼 낭만적으로 반짝였다. 포르투가 낭만적인 도시로 여행자들에게 각인되는 이유의 팔 할 이상은 ‘저물녘의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경관’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마법에라도 걸린 듯 황홀하게 반짝이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바라보면서, 곧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뒤에 포르투 여행을 추억할 때, 지금 이 장면을 떠올리리라는 것을. 강과 도시와 다리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임을. 그 순간 다리 건너 언덕 위에 보석처럼 빛나는 세하두 필라르 수도원에서, 혹은 수도원 아래 모루공원에서, 저물녘의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런 비슷한 느낌을 포르투 도심 한복판의 클레리구스 탑에서도, 도루강을 끼고 길게 뻗은 히베이라 광장에서도 느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클레리구스 성당 한쪽의 좁은 지름의 나선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높이 76m의 탑 위에서 내려다본 올드시티와 도루강의 경관은, 오래 두고 꺼내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속에 선명하게 인화됐다. 해 질 무렵 노천카페가 늘어선 히베이라 광장에서 펼쳐지던 낭만적인 버스킹 공연 장면도 잔상처럼 슬로모션으로 남았다.
강박과 의무 없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곳이어서 더 그랬을까. 포르투에서 마주쳤던 장면은 다른 여행지에서의 기억보다 유난히 선명하다. 여행의 효능이 ‘추억’에 있다면, 그래서 그걸로 일상에 동력을 얻을 수 있다면,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는 이유만으로도 포르투는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여행지’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을 마주하다
포르투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공간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포르투대학 건축학부 건물이다. 경사진 부지에 상자 모양의 건축물 다섯 동을 앉혔는데, 공간의 유기적 연결과 자연채광을 섬세하게 끌어들인 설계가 인상적이다. 공간에 따라 광량이나 질감이 다르다. 바이로 다 보사 주택복합단지도, 세할베스 현대미술관도, 상 벤투 지하철역도 그의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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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현지 독일어 학원 & 유학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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