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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연말이면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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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연말 3대 프로그램’이라 부르는 공연이 있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인형’, 헨델 ‘메시아’ 그리고 베토벤의 ‘합창’이다. 공연장 정보에 이런 레퍼토리가 나열되면 “아, 드디어 올해가 가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압도적이다.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어극장에서 초연된 후 딱 200년이 지났지만, 이 곡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졌다. 올해도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인천시향, 강릉시향, 부천필하모닉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송년 공연으로 선택했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좋아했다. 특히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를 좋아해서 언젠가 자신의 음악 속에 구현하려고 갈무리해 두었다. 마침내 1824년, 베토벤은 아홉 번째 교향곡을 무대에 올렸다. 청중은 당혹스러워했다.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작품이 터무니없이 길고 복잡했다. 악기 편성의 규모, 곡의 구조와 길이, 연주의 난이도가 모두 기준치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향곡에 4중창과 합창까지 집어넣다니….

 

4악장 앞부분에서 폭풍 같은 관현악이 연주된 후, 바리톤이 일어나서 노래를 시작한다. “오, 벗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좀 더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이 부분은 실러의 시가 아니라 베토벤이 직접 써넣은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계에 칩거해 있던 베토벤은 세상에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그 말에 오케스트라가 술렁이고, 네 사람의 앙상블이 이어지고, 마침내 합창이 가세한다. “환희여, 신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원래 교향곡은 악기의 교감을 극대화하려고 만든 장르였다. 그 방식으로 8개의 교향곡을 완성한 베토벤이 왜 마지막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집어넣은 것일까? 슬픔과 분노를 넘어 자유와 환희의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노랫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악기만으로 응집한 차가운 순수의 세계가 아니라, 말과 음악을 통합한 세계가 필요했고, 그 철학적 결정체가 교향곡 9번 ‘합창’이 된 것이다.

 

“악한 현실이 갈라놓은 것을 결합하고” 마침내 “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끌어안는” 세상이라니. 베토벤인들 그것이 불가능한 표현이란 걸 몰랐을까?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이념의 끈을 놓지 않았다. 베토벤은 실러의 시를 읽던 스무 살 시절부터 그런 메모를 남겨놓았다. “할 수 있는 한 선한 일을 하고, 자유를 모든 것보다 사랑하고, 왕 앞에 불려가서도 진리를 부인하지 말자.” 그 오랜 의지가 있었기에 교향곡 9번 이 나올 수 있었다. 2025년 12월, 한국 땅에서 ‘합창’을 다시 들어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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