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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여행]

돌로미티 상징하는 압도적 세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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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형성된 돌로미티(Dolomite)는 이탈리아의 알프스로 3,000m가 넘는 암봉이 18개나 되고 하늘과 맞닿을 듯 뻗은 봉우리, 에메랄드빛 호수, 야생화 평원, 울창한 숲과 계곡이 가득하다. 제주도 면적의 3배나 되는 광활한 산군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며, 특히 암벽 등반가들이 무척 사랑하는 곳이다. 18세기에 이곳의 광물을 탐사했던 프랑스의 광물학자인 데오다 그라테 드 돌로미외Déodat Gratet de Dolomieu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이곳에서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해발고도 2,752m의 라가주오이산장Rifugio Lagazuoi 주변에는 전쟁 당시 만들었던 터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돌로미티의 상징과 같은 바위 봉우리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가 있는 로카텔리산장Rifugio Locatelli 주변에서도 격전이 벌어졌다. 이제 전쟁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지만 돌로미티 곳곳에는 음식과 언어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문화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돌로미티 트레킹은 산장과 산장 사이를 걷는다. 트레킹하는 동안 산장에서 숙박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사항이 산장 예약이다. 산장의 규모가 크지 않은 관계로 예약이 쉽지 않아서 가능한 일찍 준비하는 것이 좋다. 최적의 시기는 눈이 녹아서 싱그러운 초록을 느낄 수 있고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는 6월에서 9월까지이다.

트레치메와는 완연하게 다른 매력을 보여 주는 카디니산군의 첨봉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모르도르와 흡사해서 모르도르의 탑이라고 불린다.


2020년에 돌로미티 트레킹을 계획하고 모든 예약까지 끝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계획으로만 끝냈던 여행을 2024년 7월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 일정은 알타비아Alta Via NO.1,  알타비아 NO.2,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로젠가르텐봉Rosengartenspitze, 알페디시우시Alpe di Siusi, 세체다Seceda, 사소룽고Sassolungo 트레킹. 지난 4년간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모두 해소한 시간이었다.

돌로미티 트레킹 첫 번째 이야기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트레치메는 이탈리아어로 3개의 봉우리를 뜻한다. 3개의 봉우리는 치마 피콜로Cima Piccola(2,859m), 치마 그란데Cima Grande(2,999m),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2,973m)이다. 돌로미티하면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떠올릴 만큼 돌로미티의 대표적 명소이다. 간단하게 트레치메로 부른다. 

트레치메는 남쪽과 북쪽의 모습이 완전 다르다. 아우론조산장Rifugio Auronzo에서는 전체 암봉군을 볼 수 있다. 라바레도산장Rifugio Lavaredo에서 로카텔리산장Rifugio Locatelli으로 가는 언덕에서야 트레치메로 보인다. 아우론조산장에서 로카텔리산장까지 가는 동안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트레치메와 더불어 장엄한 주변 산군도 감상할 수 있어서 돌로미티 트레킹의 백미로 손꼽힌다.

카디니 디 미주리나에 서면 깊은 협곡 아래로 도비아코호수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트레치메 트레킹은 아우론조산장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서 돌로미티의 어느 곳보다 편안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지만 소요시간이 꽤 길고 자갈길이 많아 등산화나 트레킹화는 필수이다. 스틱이 있으면 많이 도움이 된다. 출발점부터 해발고도가 2,000m 이상이라 날씨가 수시로 변하니 체온조절과 우중 산행에도 대비해야 한다.

 


 

모르도르의 탑, 카디니 디 미주리나


버스 444번을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가는 동안에 이미 트레치메의 매력에 풍덩 빠진다. 이런 자연을 매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종점에서 하차하니 내 앞에 아우론조산장이 트레치메의 암봉군을 병풍삼아 다소곳이 앉아 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암봉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끝없이 이어진다. 트레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트레치메의 매력에 푹 빠진다.


이번에 걸을 코스는 아우론조산장에서 101번 코스를 따라서 라바레도산장을 거쳐 로카텔리산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로카텔리산장에서 아우론조산장까지 105번 코스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루트이다. 400m의 적당한 고도 변화가 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오른쪽에는 카디니산맥, 왼쪽에는 트레치메산맥을 곁에 두고 걸어서 돌로미티의 거대한 산군을 감상할 수 있다.

 

트레치메 트레킹에 앞서 카디니 디 미주리나Cadini di Misurina로 향하기 위해 101번에서 107번으로 코스를 변경한다. 트레치메와는 완연하게 다른 매력을 보여 주는 카디니산군의 첨봉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사우론의 영토인 어둠의 땅 모르도르mordor와 흡사해서 모르도르의 탑이라고 불린다. 트레치메 트레킹의 보너스 코스이다. 돌로미테에서도 가장 웅장한 바위 산군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정면으로는 카디니산군이 펼쳐지고 뒤를 돌아보면 트레치메가 멀리서 손짓을 한다. 깊고 깊은 협곡 아래로는 도비아코호수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웅장한 자연에 압도된다. 카디니산군의 최고봉은 치마 카딘 디 산 루카노Cima Cadin di San Lucano(2,839m). 첨예하게 솟은 수많은 봉우리들은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놓은 듯하다. 계곡 사이로 흘러내린 빙하 흔적까지 더해지니 더욱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과도 흡사하다. 사우론의 탑 바랏두르Barad_dur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 스팟으로 가는 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더욱 아찔하다. 

트레치메 트레킹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카디니 디 미주리나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이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려면 아우론조산장의 주차장에서 일출시간 1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카디니 디 미주리나의 일출은 왼쪽 뒷부분에서 뜨는 해의 빛이 카디니산군에 비춰지면서 시작한다. 남미 파타고니아 엘찰텐El Chalten의 일출과 참으로 비슷하다. 바람이 몰고 온 황금빛이 마치 슬로  비디오로 서서히 바위에 물들여지는 과정은 온몸이 전율이 돋았었다. 그때의 그 감동이  너무나 생생하다. 카디니 디 미주리나의 일출은 상상만으로 만족하고 치마 카딘 디 산 루카노를 바라본다.

 


 

트레치메의 매력 속으로!
아우론조~라바레도~로카텔리~아우론조

 

카디니 디 미주리나에서 아우론조산장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트레치메 트레킹을 시작한다. 특히 아우론조산장에서 라바레도산장까지는 완만한 경사길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그래서인가 유독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작은 예배당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주변에는 전투에서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십자가들도 있다.

트레치메를 가장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는 로카텔리산장에서의 휴식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라바레도산장 도착. 이곳에서 트레치메를 바라보며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했다. 나무들이 없이 암봉들만 가득한 삭막한 지형이지만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트레치메 트레킹에서 가장 멋진 전망대 중 하나인 포셀라 라바레도Forcella Lavaredo로 향하는 길은 두 가지. 오른쪽은 완만하고 왼쪽은 조금 급경사. 왼쪽 길로 접어든다. 저 멀리 라바레도산장이 점점 작아지면서 트레치메가 점점 가까이 다가선다. 

드디어 포셀라 라바레도. 삼형제가 옆으로 나란히 서있다. 바로 곁에 서 있으니 거대한 암봉 트레치메에 압도된다. 구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걸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사진을 남기느라 부산한데 난 그저 바라만 보았다. 1,000m 이상 수직암벽으로 이뤄진 세 봉우리의 거대한 모습에 경외심이 느껴진다. 이제야 비로소 트레치메를 만났음이 실감이 난다. 로카텔리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하얀 캔버스에 점으로 이어진다.

 

라바레도산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교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포셀라 라바레도를 지나 로카텔리산장으로 향하는 길은 살짝 내리막이어서 조금 빨리 걷는다. 트레킹 반환점인 로카텔리산장에서 트레치메의 정면을 마주한다.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제야 트레치메의 진짜 모습을 만났다.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에 우뚝 선 트레치메를 바라보며 산장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포셀라 라바레도에서 마주한 트레치메와는 완연히 다르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감동이 밀려온다. 이 모습을 보려고 4년간을 가슴에 품어왔구나. 수많은 트레커와 클라이머들을 매혹시키는 트레치메를 바라보며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을 온 몸으로 맞이한다.

 

로카텔리산장까지 왔다면 사진 스팟으로 유명한 동굴을 다녀와야 한다. 로카텔리 위쪽으로 보면 작은 예배당이 있다. 그곳을 지나 모래 자갈길을 오른다. 상당히 미끄럽고 급경사이다. 언덕으로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트레치메 옆에 피아니호수Laghi dei piani가 어우러진다.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초록의 대자연 속에 누워 있거나 앉아서 쉬는 사람들의 풍경이 참으로 평화롭다. 해외 트레킹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자연을 천천히 온몸으로 즐기는 그네들의 여유로움이다. 어떤 트레일을 몇 시간 만에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트레치메 트레킹에서 부모들과 함께 온 어린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10여 분 올라 동굴 앞에 섰다. 트레치메 모습을 가장 멋지게 담을 수 있는 사진명소이다. 3곳의 동굴에서 찍은 사진은 트레치메를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서 보는 재미까지 있다. 외국인 커플의 인증사진을 찍어주고 나의 사진도 품앗이로 남겼다.

아담한 피아니호수. 색깔이 어찌나 예쁘던지 발을 담그고 싶은 욕망이 슬며시 올라온다. 호수 아래쪽으로 연결된 또 다른 트레일에서 암벽장비까지 갖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돌로미티를 북한산처럼 언제나 마주하는 그들의 일상이 부럽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돌로미티 구석구석을 걷고 싶다. 당일 트레일이라 호수 전체를 한 바퀴 돌 만큼 시간 여유가 되지 않아서 아쉽다. 

로카텔리산장을 떠나 출발했던 아우론조산장으로 향하며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트레치메를 배경으로 애견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커플. 어린아이를 태운 등산 캐리어를 메고 걷는 아빠. 다정하게 머리를 기대고 앉아서 쉬고 있는 커플. 트레치메를 즐기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햇살을 받으며 초록의 대자연 속에 누워 쉬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 참으로 평화롭다.


말가 랑갈름Malga Langalm까지는 약 3km. 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나면 다시 거의 같은 고도까지 올라야 해서 트레치메 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라 할 수 있지만 트레치메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하이라이트 구간이기도 하다. 이름도 없는 작은 호수 주변엔 온갖 야생화가 꽃 잔치를 벌이고 초록 평원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이들의 이름이 이니셜로 남아 있다. 돌 하나하나를 주워서 이니셜을 만들 때 그들의 가슴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말가 랑갈름산장을 지나 아우론조산장으로 향한다. 이제 40분 정도 지나면 아우론조산장에 도착하고 트레일도 끝난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조금 천천히 옮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가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하고 빛나고 작은 에메랄드빛 호수에는 트레치메가 담겨 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반영이다. 마지막까지도 멋진 선물을 아끼지 않는다.

 

다시 아우론조산장. 하루 종일 트레치메를 바라보고 15km 가까이 걸었음에도 하산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트레치메산군, 숨막히는 계곡, 푸른 초원,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흐른다.

 

트레치메 트레일

 

  • 경로: 아우론조산장 - 카디니 디 미주리나 - 아우론조산장 - 라바레도산장 - 로카텔리산장 - 말가 랑갈름 - 아우론조산장
  • 거리: 약 15.2km
  • 시간: 약 6시간
  • 최저/최고고도: 1,711m/2,46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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