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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생활]

독일에서의 전기차: 결국 역시 전기차도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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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로 독일을 달리다

 

지난 1월 중순, 독일 남서부 바덴뷔트렘베르크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에 다녀왔다. 출장 중 포르셰의 전기차인 타이칸 터보를 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다양한 도로를 달리며 초급속·급속·완속 충전기를 체험했다.

 

지금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1886년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15년에 세계를 강타한 디젤 게이트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고, 설상가상 같은 해 12월에 채택된 파리협정은 내연기관차에 결정타였다. 수송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차가 필요해진 것이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연합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핏포55’(2030년까지 유럽연합의 평균 탄소배출량을 1990년의 55%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담은 입법 패키지)를 2021년 유럽의회에서 승인했다. 여기에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출시를 금지하고 탄소흡수원을 확대하는 등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목표와 방법을 제시했다.

 


 

한국 전기차 1대당 충전기 0.5대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은 2023년 284만4천여대의 승용차가 판매되는 유럽 최대 시장이다. 전기차 판매량은 독일이 52만4천대로 1위, 영국이 31만4천대로 2위, 프랑스가 29만8천대로 3위다. 유럽연합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2022년 112만대에서 지난해 153만대로 약 37%가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독일은 47만대에서 52만대로 불과 11% 늘었다. 같은 기간 프랑스(47% 증가)·영국(17% 증가)과 비교해도 낮다. 독일이 전기차 보조금 규모를 축소했고, 지난해 12월18일부터는 보조금 지급을 아예 중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9월부터 기업 전기차에 정부보조금을 제외한 영향도 컸다. 5만4654대의 전기차가 팔린 지난해 12월에 견줘 지난달(2만2474대 판매)에는 판매량이 59%나 감소했다. 보조금 지급 중단은 지난해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코로나19 예산 가운데 600억유로(약 85조4000억원)를 기후변화대책기금으로 전용한 2023·2024년 예산안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말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 연례 발표에서는 경제 상황이 나빠 올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터리 전기차(BEV)는 14% 감소한 45만1000대, 플러그드인하이브리드차(PHEV)는 5% 증가한 18만5000대 판매를 예상했다.

 

이번에 시승한 포르셰 타이칸 터보 모델은 최고출력 680마력인 스포츠 세단으로 배터리 용량은 93.4㎾h, 국내 인증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284㎞, 유럽 인증 기준(WLTP)으로는 최대 452㎞다. 800V 전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 시간당 최대 270㎾의 초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전기차 충전 방식은 교류(AC) 완속, 직류(DC)로 100㎾대인 급속(CCS)과 최대 350㎾급의 초급속이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총 전기차 약 205만대, 충전기 약 9만7495대로 전기차 21대당 하나의 충전기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작년 말 총 전기차 약 41만대이고, 지난해 8월 전력거래소 자료 기준 전체 충전기 대수는 약 20만개다. 전기차 2대 당 충전기 1대 꼴로 충전기 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전기차로 주행을 해보니 충전은 독일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오니티 초급속 충전기에서 충전하고 있는 모습

 

우선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우 빠른 초급속 충전 때문이다. 40분 정도 만에 배터리 잔량 20%에서 100%까지 충전할 수 있었다. 아이오니티(IONITY)는 포르셰를 포함한 폭스바겐 그룹, 벤츠, 베엠베(BMW)는 물론 현대자동차 그룹까지 참여한 350㎾급 초급속 충전 네트워크다. 현재 유럽 주요 고속도로 휴게소에 598개 충전소와 3300개 이상의 충전기를 운영 중이고 계속 확장 중이다. 직접 확인한 타이칸의 최대 충전속도는 시간당 238㎾로 영하의 날씨를 생각하면 매우 빠른 속도였다.

 


 

무거운 급속충전기 이동 편하게

 

내비게이션의 기능도 편리했다. 목적지까지 주행가능거리가 부족할 경우 경로 상의 충전기들을 자동으로 중간 경유지로 설정하는데, 특히 각 충전소에서의 충전량과 충전 시간을 계산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을 알려줬다. 또 실시간으로 충전기 사용 상태를 확인해, 가는 길에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충전기로 경유지를 바꾼다. 전기차는 어디서 충전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몰라 불안한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충전카드의 호환성도 좋았다. 충전카드 한장으로 독일의 고속도로 휴게소, 도심의 노상 주차장, 쇼핑몰의 완속 충전기는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주유소의 전기차 충전기까지 모두 사용이 가능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의 환경부 카드를 쓰거나, 최소 서너개의 충전사업자별 카드가 필요한 것과 견주면 대단히 편리했다.

 

독일도 지역별로 전기사업자에 따라, 충전사업자와 충전속도 등에 따라 요금이 다른 것은 물론 결제 플랫폼 업체도 다양하다. 요금은 완속 기준 1㎾h당 0.39~0.65유로(약 560~934원), 초급속도 0.35~0.89유로(약 503~1279원)다. 테슬라는 슈퍼차저를 이용할 때 0.45유로(약 647원)다. 국내 100㎾급이 ㎾h 당 347.2원인 것과 비교하면 꽤 비싸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이 이어지고 있고 현재 독일의 휘발유·경유 가격이 리터당 1.7유로(약 2500원) 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직 경제적인 것은 맞다.

 

각 플랫폼마다 사용 패턴에 따라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신선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장거리 주행이 잦은 사람이라면 15유로(약 2만1560원)의 기본요금을 내고 ㎾h당 0.35유로(약 503원)의 가장 저렴한 금액으로 초급속 충전기를 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기 요금과 충전사업자의 사업성에 따라 요금을 정하는 것에 반해, 독일은 사용자 요구와 환경에 따라 요금제를 구성한 것이다.

 

개인 소유 케이블을 이용하는 완속충전기

 

사소한 편리함들도 느꼈다. 무거운 급속 충전기 케이블이 위쪽 거치대에 매달려 있어 쉽게 움직일 수 있었고 바닥에 끌리지 않아 손을 더럽히는 일이 없었다. 많은 여성 운전자가 전기차 충전을 싫어하는 이유를 없앤 것이다. 또 개방된 완속 충전기는 본체만 있고 개인 소유 케이블을 연결해 쓰는 방식이 많았다. 충전 케이블의 길이를 길게 만들 필요가 없고 차마다 다른 충전구 위치에 맞춰 주차하면 되니 편했다.

 

결국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단순히 충전기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용 패턴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독일은 내연기관 종주국에서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전기차를 더 쉽게 쓸 수 있는 배려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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