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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밀착하는 북한과 러시아… 어떤 의미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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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하며 4년여 만에 정상외교를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구체적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가 급격히 밀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양국 지도자 간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5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무기 거래를 논의할 것이라고 BBC의 미국 파트너 ‘CBS 뉴스’가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두 정상이 이달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에서 만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이 방탄 열차를 타고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계획하고 있는지 묻는 말에 “이와 관련해 밝힐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북·러 회담 성사 가능성 높아… 시기는 '글쎄'

동아시아연구원(EAI) 북한연구센터 소장인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장 다음 주에 두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원래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소위 ‘1호 행사’는 철저히 비밀로 진행되는데, 이번엔 (언론을 통해) 동선과 이동수단이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BBC 코리아에 “지난 2018년과 2019년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방문할 때도 날짜가 잡혔음에도 (구체적인 정보는) 끝까지 비밀이었다. 특히 이동 수단 같은 경우 끝까지 몰랐다”고 했다.

 

2006~2008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도 BBC에 “김 위원장은 자신의 신변에 대해선 완전히 편집증적”이라면서 “비밀리에 움직이고자 무척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자 블라디보스토크에 갈 계획이 널리 알려지면 모든 걸 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북·러 정상 간 만남과 관련된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건 이례적”이라며 “북한이 (이에 따라) 일정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지난 7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전승절) 기념식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눈에 띄게 밀착 행보를 보인다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전승절'로 부르는 지난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꼭 다음 주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두 지도자가 언젠가 만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며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인 관계 개선 및 강화에 대한 양국의 의지와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이야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관계 개선, 즉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중단됐던 정치외교나 군사안보, 사회문화 등 여러 영역에 이르는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복원하고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공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까워지는 북·러, 역내 영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북한이 더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러 관계, 나아가 북·중·러 관계가 역내 안보에 미칠 영향에 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 세계가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주시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다. 북한이 돈과 식량, 석유 등을 대가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활용할 수 있는 포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무기를 대가로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기술 이전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박 교수는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첨단 무기 체계 기술을 이전한 적이 없다”며 북한이 (러시아의 첨단 무기 체계를) 다른 루트로 불법적으로 갖고 와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을 통해 기술을 얻어낸 적은 있어도, (러시아로부터) 직접 기술 지원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만남이 상징성을 넘어 무기 체계를 지원하고 교환하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유럽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원하는 살상용 무기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한다는 어떤 정확한 증거들이 밝혀진다면 북한은 나토 동맹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겁니다.”

 

 

또 전문가들은 북·중·러 합동 군사 훈련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러·중 합동군사훈련의 규모나 북한의 군사력 등을 고려했을 때 한·미·일 협력에 맞서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식” 훈련에 가까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 연구위원은 “(북·러 밀착과 관련해)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면서 “미국의 판단과 중국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사실상 미국과의 관계에서 타협을 하고 G2로서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상황인데, 러시아와 북한은 (미국과) 대결 구도로 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중국이 북·중·러로 연대감을 갖고 공동 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거예요. 그러나 만약에 미중 간 긴장 관계가 계속 고조되면 중국도 결국 북·중 (관계) 쪽으로 더 접근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전문가들은 한국이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러시아와 북한이 과도하게 밀착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를 계속 표명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긴 호흡으로 본다면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적절한 수준으로, 우리 정부의 표현대로 하자면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연구위원은 정부의 한·미·일 협력 방향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정책이 지나치게 쏠려 있다고 봤다.

 

“한국이 30년 동안 공들였던 유라시아 지역 외교를 방치한 상태로 놔두면 소중한 전략자산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어요. 한·미·일은 한·미·일대로 나가되,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외교적 역량을 계속 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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